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나는 한동안 마른 나무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기에 녀석들은 나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뻐꾸기들은 높은 우듬지에서 장난을 치며 위아래로 서로를 쫓았고, 그들의 기쁘고 유연한 비행은 환호하는 꽃 장식들 속에서 벌어졌으며, 크고 어두운 색깔의 이 새들은 나무에서 나무로 피융 - 소리를 내며 옮겨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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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까치를 보았어요. 해 질 무렵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팔각정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쐬던 때였습니다. 처음엔 새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지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건 까치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무언가에 한창 몰두해있었거든요. 팔각정 주변을 서성이는 까치의 종종걸음을, 쉼 없이 오르내리는 퍼득거림을 지나치고 나서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부지런히 나뭇가지 모으는 까치를.
처음엔 20~30cm 길이의 나뭇가지를 물었다 버렸다 하길 반복했어요. 적당히 튼튼한 녀석을 찾는 걸까. 제 눈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자꾸 성한 가지를 도로 뱉어내니 답답하기도 했죠. 그렇게 한참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가지를 발견하면, 곧장 튀어 올라 나무를 계단 삼아서 총, 총, 총. 순식간에 둥지를 향해 날아올랐어요. 마땅한 가지를 구하기 위해 이웃 나무로 날아가기도 했지요. 부리로 나뭇가지를 톡톡 건드리며 적당한 부분을 찾더니, 힘껏 부러뜨리곤 꽉- 물어 둥지로 날아올랐습니다.
갸우뚱했어요. 둥지 아래 시멘트 바닥에는 수많은 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거든요. 까치가 물어온 것과 비슷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더라고요.
이미 시도했지만 약해서 탈락한 가지인지. 바람이 불어서 둥지로부터 떨어진 가지인지. 아니면 옮기다 힘이 빠져 떨어뜨린 건지.. 궁금했어요. 나라면 멀리 돌아가지 않고 적당히 두드리는 흉내만 내다가, 대강 발밑에 떨어진 가지를 주워 모았을 텐데. 왜 나의 부리는 작고 힘이 없어서 하나씩 밖에 옮길 수 없는 건지 투덜거렸을 텐데. 그걸 핑계 삼아 얼기설기 집을 만들곤 나름 흡족한 기분을 누렸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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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는 3월부터 5월 즈음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약 800여 개의 가지를 모아 둥지를 튼다고 해요. 작은 몸으로 분주히 움직여야 완성되는 긴 여정일 테죠. 새로운 가지 앞에서 망설인 시간. 가지를 옮기다 떨어뜨려서 되돌아가야 했던 시간. 이 시간을 합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쌓아야 둥지가 완성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부는 어느 날 멍하니 팔각정에 앉아, 새로운 가지를 찾아 날갯짓하는 까치를 바라보며 '아 봄이구나 -' 읊조려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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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하는 곡우(穀雨). 시간을 꾹-꾹 눌러 보내는 느린 사월이에요. 버스를 탈 땐 나른한 햇살을 내리쬐며 꾸벅- 꾸벅 졸기도 하고, 길을 걸을 때면 그늘진 길보단 봄볕을 따라 유유히 걷곤 합니다. 해가 저물면 얇은 겉옷을 챙겨 입고 선선한 공기를 맞으며 동네를 산책하는데, '봄밤은 참 아름답구나-' 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 없이 감탄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연분홍색으로 물들었던 벚꽃은 땅으로 후두두 떨어지고 풍성한 노란 잎을 자랑하던 민들레는 어느새 둥근 씨를 터뜨리며 바람 따라 사라져요. 그리고 쨍한 연두색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 꽃잎의 빈자리를 채웁니다.
보다 짙은 색의 꽃들도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해요. 포도송이 같은 차분한 보라색 라일락, 채도가 높은 자줏빛 철쭉, 단정한 모양이 아름다운 붉은 동백, 땅에 납작 엎드려 고개를 치켜든 쨍한 보랏빛 제비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봄의 색깔이 점점 강렬하고 뚜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思春期), 청춘(靑春), 회춘(回春). 생각이 무르익어 꽃을 피우는 사춘기, 이전보다 또렷한 색을 띠며 생생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청춘, 아무튼 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담긴 회춘.
이처럼 우리는 봄을 중심으로 특정 시절을 표현하곤 합니다. '봄날은 간다'처럼 찰나의 시절을 그린 영화나 아득한 시절의 향수를 일으키는 노래도 있죠. 봄이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건.. 저뿐만은 아닐 것 같아요. 아주 잠시. 영원할 것 같은 아름다움에 아주 잠시 머물렀기에 애틋함으로 기억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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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穀雨). 오늘 소개할 재료는 <취>입니다.
곰취, 참취, 미역취, 수리취... 세상에, 취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지난 편지에 소개해 드린 영민 님의 봄나물 워크숍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에요. 곰취는 워낙 큼지막하고 종종 쌈으로 즐겨 먹었기에 그나마 이름이 익숙하지만, 자잘한 취나물은 '전부다 같은 잎이겠거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별생각이 없었답니다,, 홍홍,,)
오늘 마트에서 데려온 재료는 '취나물'이라고 적혀있어요. 도대체 이건 무슨 취일까- 궁금해서 식물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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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단단한 통에 꾹 눌린 상태로 뭉쳐져있던 구겨진 잎을 살살 펼칩니다. 잎의 끝자락은 뾰족한 톱니 모양을 띠고, 잎의 뒷면에는 또렷한 주름이 보여요.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도록 얇고 순한 줄기만 골라 꺾은 걸까요. 새로 돋아난 작은 이파리와 식물의 윗대도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물과의 차이점을 구분하기 어려워요. 땅에서 자란 모습을 상상하며 줄기를 세로로 곧게 세워도 봅니다. 보송보송한 털이 보이고요. 잎보단 줄기의 향이 강한 것 같아요.
참취일까? 미역취일까? 식물 사전에서 가장 닮은 사진을 골라 잎자루를 비교해 보지만, 글쎄 어떤 취인지 잘 모르겠어요. 허허허..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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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채소요리는 <회춘 만두>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두릅을 맛보는 시기에 저도 향긋한 두릅을 즐겨보고 싶던 찰나.. 툭 - 할머니의 이가 빠졌어요. 아랫니가 흔들리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돼서 치과를 예약해놓고 진료를 기다리시던 중이었죠. 하지만 양치를 하다가 갑자기 이가 빠진 그날, 치과에 가서 총 네 개의 이를 발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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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기안84의 '회춘(回春)'. 이 작품에는 한 사람의 인생에 두 번의 청춘이 찾아옵니다. 사람의 신체 나이가 1에서 50세를 향해 올라갔다가, 중년이 되면 회춘하여 다시 50에서 1세로 내려오는 거예요.
등장인물들은 중년을 향해 올라갈 때 한 번, 내려올 때 한 번. 총 두 번의 청춘을 맞이할 수 있는 거죠. 따라서 생애 두 번은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태어났을 때 한 번 그리고 나이가 끝까지 차올랐을 때 한 번.
여든에서 아흔까지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어린아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단하던 잇몸은 말랑해져서 이가 하나둘 빠지고, 머릿속은 점점 단순해지고. 복잡한 사고력은 물론 어제와 오늘의 기억을 서로 연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만큼 말도 어눌해지죠. 뼈와 근육도 아이의 것과 비슷해져서 다리가 덜그럭 거리기 시작하는데,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뗄 때처럼 의자나 엄마아빠의 손에 의지해 몸을 지탱해야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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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춘(回春)이라는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말합니다. '나도 평생을 기다려서 온 회춘이야-'라고. 삶의 지혜는 그대로 갖고 있지만 신체가 젊어졌으니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두 번째 청춘을 맞이한 그들은 점점 더 어려지고 어려져서, 누군가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신생아인 상태로 죽음을 맞습니다. 예외 없이 누구나 똑같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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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춘한 아이의 몸은 기억할까요? 만약 지나간 세월이 몸의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면. 오랜 삶의 지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의 구석구석 깊숙이 박혀있다면, 비록 이 재료가 취나물인지 구별하진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처음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쌉쌀한 나물을 뱉어내지만, 회춘한 어린아이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뭔진 몰라도 향이 좋군-'. 몸은 어려졌지만 깊이 새겨진 감각이 나물의 즐거움을 기억한다는 건, 어쩌면 회춘한 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할머니를 위해 취나물 만두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하고 부드러운 재료를 사용했지요. 아직 잇몸이 덜 아물었을 것 같아서 순하게 소금 간만 살짝 해주었고요. 계란 국이나 다시물에 불려서 뭉개드실 수 있도록 얇게 빚었답니다.
언젠가 저도 아이로 돌아갈 날이 올테니- 오늘은 그날을 위한 채소 요리를 예습해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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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 》
- 만두피
- 취나물 두부 버섯 당면
《 레시피 》
모든 재료는 이유식처럼 준비하기 🥣
① 취나물은 줄기를 제거하고 잎만 손질한다. 잎은 데쳐서 잘게 썰어준다.
② 당면은 퍼지는 식감으로 푹 삶아 다진다.
③ 표고버섯도 살짝 데쳐 다진다.
④ 만두 속 재료를 고루 비벼 소금 간을 한다.
⑤ 만두를 얇게 빚는다.
⑥ 만두는 찌거나 국으로 끓여 부드럽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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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사월은 언제나 별 의미 없이 흘러 보내곤 했습니다. 만년 새 학기가 시작될 것처럼 설레는 삼월. 그리고 유난히 행사가 많아 분주한 오월. 그 사이에 끼어서 호흡을 고르던 사월. 아니지.. 사실 쉼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한 채 스쳐지나는 어중간한 달이었달까요.
봄을 여섯 개로 쪼개고 나서야 비로소 사월이 눈에 들어옵니다. 절기라는 낯선 시간을 입으로 읊어 보고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면서 특히 편지로 옮겨보면서, '아 봄은 이런 모습도 있구나- 단순히 벚꽃 잎이 휘날리고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는 순간만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찰나인 줄 알았는데. 봄은 생각보다 어둡고 치열한 시간을 지나 피어남이라는 형태에 도달하는구나-'라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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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사월은 파란 달로 기억될 것 같아요. 가을의 청명함과는 사뭇 다르지만 가볍고 옅은 봄날의 푸름으로. 운이 좋은 저녁이면, 산책하다가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봄밤이라야 느낄 수 있던 어둑한 파랑의 깊음으로요-
마지막 봄 편지는 노래와 시를 첨부하며 이만 줄일게요. 산책할 때 반복해서 듣던 노래 한 곡. 그리고 첫 입춘 편지에서 소개했던 시 한 편입니다. 왠지 밝은 분위기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묵직한 마음을 쏟아낸 것 같아서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해요. (하핫, 걱정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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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의 멋진 봄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정말. 정말로- 고맙습니다. 모두 선선하고 푸른 봄밤 보내시고요. 저는 여름이 시작되는 날 다시 돌아올게요.
그럼 다음 절기에 만나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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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린다는 말
그 말의 근거가 될 수 있나요
바삐 오가던 바람
여유 생겨 말하네요
내가 기다린다는 봄
왔으니 이번엔 놓지 말라고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이 마음 저무는 날까지
푸른 낭만을 선물할게 초라한 나를 꺾어가요
이 벅찬 봄날이 시들 때
한 번만 나를 돌아봐요
[ 입춘, 한로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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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갈색 숲이 며칠 전부터 어린 초록의 명랑한 빛을 띠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는 초조함과 갈망을 품고 숨어서 엿본다. 아름다움의 계시를 온전히 보고, 파악하고, 함께 경험하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듯이 말이다. 내가 소년이던 옛 시절에 봄은 얼마나 길었던가. 정말이지 얼마나 끝없이 길었던가!
시간이 그런 것을 허용하고, 기분이 좋을 때면 나는 습기를 머금은 풀밭에 오래 누워있었다. 조용한 손님이 되어 소년 시절이라는 행복한 정원으로 꿈꾸듯 들어간다. 다시 한번 그리로 날아가 청춘의 맑은 아침 공기로 숨 쉬고 한 번 더-.
잠시만이라도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아주 드물게 이루어지는 멋진 일이다.
[ 창비,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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