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월의 신선한 아침에 맞이하는 그 푸르름 말입니다. 벨벳의 부드러움과 눈물의 반짝임이 담겨있는 푸르름이지요. 당신에게 이 푸르름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
|
|
나는 단지 우리가 '화창한 날', '푸른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에는 신비로움이 묻어 있어요. 한 줄기 빛의 서늘한 칼날이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 우리가 수많은 별 아래에 묻혀 있는 것을 보게 되지요. 이따금 그것을 느끼고 고개를 듭니다. 아주 잠시 동안. 우리가 말하는 '좋은 날씨'란 바로 이런 것이에요.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
|
|
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볕이 아름다운 사월이에요. 얇은 가지에서 방울방울 맺힌 생명을 발견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손끝으로 작은 봉오리를 톡- 톡- 두드려보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식물들은 저마다 단단한 형태를 갖추곤 초록 잎으로 엷은 꽃으로 피어나고 있어요. 잎의 주름이 선명하고 끝이 뾰족한 걸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봄의 형태를 띱니다. 민들레는 언제부터 노란 잎을 품고 있던 건지. 풍성하고 샛노란 잎을 터뜨리며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불쑥 등장하기도 해요.
나무 목, 연꽃 연. 목련은 나무로 피어난 연꽃이라는 뜻일까요? 글자는 각진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왠지 정직하고 반듯한 반면 소리 내서 그 이름을 부를 땐 '몽-련'. 돌연 아득하고 애틋해집니다.
몽 - 련. 입을 작게 오므리니 부드러운 소리와 적당한 떨림이 동그란 형태로 한데 모여 입술 앞에 놓입니다. 희미해서 금방 사라질 것 같은 입소리가 나요. 하얗고 커다란 꽃 덩어리가 나무에 어른어른 매달려 있다가 '나는 나의 봄을 먼저 끝내련다-'라고 자신의 계절을 선포하듯 하루아침에 땅으로 떨어져 아쉬움을 남기는, 참으로 목련 다운 이름이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
|
|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 유독 흐린 날이 많았던 지난 춘분과는 다르게 요즘은 맑고 푸른 하늘이 연달아 사월을 장식하고 있어요. 새벽은 아직 한기가 느껴지지만 해가 높이 뜬 대낮이면 기온도 적당히 오르고 볕도 따스해져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하듯 거리를 걷곤 한답니다.
문득 궁금했어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봄을 느낄 수 있을까. 어디로 향해야 봄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로운 봄의 소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누구를 만나야 그저 노오란 봄을 다른 색깔의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 그리고 새로운 장소 두 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봄나물 워크숍
부암댁( @buam_life)이라는 필명으로 공간 사부작( 私敷作)을 운영하는 영민 님의 봄나물 워크숍을 다녀왔어요.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위치한 연산문화창고에서 진행돼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지만, 오랜만에 봄나들이하는 마음으로 기쁜 발걸음을 재촉했답니다. 평소 다양한 식재료를 탐구하고 소개하는 영민 님의 글을 탐독해온 독자로서 기대가 컸죠.
"나물은 허브가 아닌 Namul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건강하고 싶어서 나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나물의 맛과 향을 즐겼더니 건강했다. 라는 접근은 어떨까요?"
"산에서 자란 취나물의 맛이 쓰면 상상해 보는 거죠. 취가 자란 환경을요. 얼마나 추운 곳에서 자랐길래 자신을 지키려고 쓴맛을 품었을까.. 상상해 보는 거예요."
수업을 시작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말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럭저럭 비슷하게 생긴 초록색 나물을 얼마나 고유하고 개성 있는 존재로 대하는지. 나물이 가진 맛과 향의 특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는지. 나물이 자라는 땅과 기후를 얼마나 다정하고 사려 깊게 관찰하는지. 그리고 자신은 경험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니 자신의 모든 말이 옳은 건 아니고, 각자의 맛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통해 우직하지만 유연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날은 총 다섯 가지 나물(머위 원추리 방풍 취 부지깽이)을 맛보았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마늘 없이 기본 조미료만을 더해 어울리는 조합을 찾아보기도 했지요. 개인적으로는 나물과 홀그레인 머스터드의 조합이 의외로 인상적이었어요. 빵과 치즈를 더한 것도 들기름을 두른 메밀국수도 상상 이상으로 별미였답니다..! (츄릅,,)
|
|
|
계절의 티 클래스
두 번째 낯선 장소는 합정동에 위치한 차실 티에리스( @tieris_tea)입니다. <차의 계절>이라는 책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되었어요. 매 절기마다 어울리는 차를 추천하고, 그 찻잎이 자란 지역의 특성을 역사와 함께 설명해 주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었지요. 마침 '입춘부터 청명까지'라는 클래스가 열렸고 덜컥 차실의 문턱을 넘게 됩니다.
차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내용부터 깊은 배경까지. 방대한 내용을 쉽고 유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한참 동안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차를 즐기는 분들은 제철 채소처럼 제철 차를 기다렸다가 찾아 마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철 차라니.. 어쩌면 당연할 법한 이야기가 왠지 새롭게 느껴지는 거예요. 차 맛은 거기서 거기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하핫..!) 찻잎도 계절과 지리적 조건에 따라, 기르고 수확하는 사람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아카시아꽃 향이 나는 차, 깊고 묵직한 차 등등..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차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맑고 투명한 녹차가 기억에 남아요. 이 녹차는 청명(淸明) 이전의 여린 잎사귀로 만든다고 합니다. 따스하고 은은한 봄볕에 어울리는 푸른 차. 딱 지금 절기에 누릴 수 있는 청명한 차였답니다.
'워낙 맑은 맛이라 금세 사그라들 것 같지만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같은 청량함이 내내 머무른다.
이 차를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마치 주문에 걸린 듯 청명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
|
|
하늘이 서서히 맑아진다는 청명(淸明). 오늘 소개할 재료는 <미나리>입니다.
미나리가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건 말해 뭐해.. 너무나 잘 알려져 있죠. (하지만 제가 잘 몰라서 허허,,)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간단히 짚어 볼게요.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아서 해독 작용을 돕고 피를 맑게 해줍니다. 식이섬유는 장운동을 촉진시키며, 칼륨은 중금속과 나트륨 등 해로운 성분을 배출해 준다고 해요. 염증을 억제하고 알코올 분해로 숙취까지 해결한다니, 이 정도면 흐물흐물한 미나리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낯선 땅에 정착해 뿌리내리는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 이 영화에서도 상징적으로 등장한 미나리는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잎줄기채소입니다. 주로 들판이나 개울에 뿌리를 두는데 특히 그늘지고 축축한 땅을 좋아한다고 해요. 줄기는 빳빳하고 곧은 모양으로 쭉 뻗었지만 잎은 다른 잎채소보다 유독 힘이 없고 축 늘어집니다. 퇴근 후 침대 위에 철퍼덕 - 기절한 모습 같기도 하지요.
하지만 일어나라고 깨우듯 손끝을 넣고 잎을 좌우로 흔들면, 잎이 서로 부딪혀 사그락 소리를 내고 코끝으로 향긋함이 밀려오는데, 당장이라도 싱그러운 요리 한 접시를 만들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줄기를 가르면 나타나는 수수깡 같은 하얀 속살도 대체할 수 없는 미나리만의 향을 품고 있어요.
|
|
|
오늘 소개할 채소요리는 <미나리 콜드 파스타>입니다.
미나리는 오일 파스타도 잘 어울리지만, 오늘은 산뜻한 봄 느낌을 살려서 콜드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어요. 미나리는 페스토로 만들어 풋풋하고 싱그러운 향을 살렸고, 대저 토마토를 썰어서 아삭거리는 식감을 더해주었지요. 중간중간 알싸한 양파가 치고 들어오는 개운함을 함께 즐겨보세요. 아참, 얇은 면은 카펠리니 대신 쫄깃한 현미 국수를 사용했답니다.
|
|
|
《 재료 》
- 현미국수 or 카펠리니 / 대저 토마토 / 양파
- 페스토 (미나리 캐슈넛 마늘 올리브유 소금)
- 소스 (레몬즙 후추 아가베시럽)
《 레시피 》
① 미나리는 믹서에 갈릴만한 크기로 자른다.
② '페스토 재료'를 모두 함께 믹서로 갈아준다.
(견과류는 약불에 노릇노릇 볶아주세요. 캐슈넛 대신 잣, 아몬드, 호두를 사용해도 좋아요. 풍미가 좋은 치즈를 추가하셔도 좋답니다.)
③ 대저 토마토와 양파는 잘게 다진다.
④ 면을 삶는다.
⑤ 삶은 면은 찬물로 벅벅 씻어낸다.
⑥ 면에 '소스 재료'를 넣고 버무린다.
②, ③, ⑥을 고루 섞고 미나리 잎으로 장식한다.
(뻑뻑하면 올리브유 넣어주기) |
|
|
남은 페스토는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보관.
올리브유를 조금 넣어주세요.
|
|
|
영화 미나리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정이삭 감독은 생태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강과 숲이 많은 곳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생태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의 제목이 왜 미나리가 되었는지 이야기합니다.
"미나리는 첫해에는 수확을 하지 않고 그냥 죽게 내버려 둬요. 다음 해가 되어야 비로소 수확을 하게 되죠. 저희 할머니도 그러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의 삶은 정말 어려웠고, 결코 성공을 보실 수 없었죠. 저희 부모님과 저희 세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어요. 할머니 덕분에요."
실제 할머니와 영화 속 할머니(윤여정)의 공통점이 있다면, "한없는 사랑을 준다는 것.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의치 않고, 오직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정직하게 살면서 주위에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단히 싹을 틔우는 사월의 봄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 싶어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지난한 겨울을 지나 묵묵히 도달한 사월의 봄. 녹음이 우거진 거리를 산책할 수 있도록 한없이 품을 내어주는 사월의 봄. 오직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빛으로 우리에게 온전한 계절을 선사하는 사월의 봄.
···
보뱅이 전한 사월의 푸르름, 그 푸름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어떻게 읽으셨을지 모르겠어요. 저의 표현이 서투르지만 모쪼록 잠시 멈추어 천천히 봄을 누리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남은 사월도 일상 곳곳에서 푸름을 만끽하시길 바랄게요.
청명(淸明)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다음 절기에 만나요. 🕊 🤍 💙
|
|
|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이 장엄한 푸름이 절망의 끝을 알려주며 당신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
|
|
Seasons All Around Us
@ooz.it Copyright ⓒ 시절의 고요 All rights reserved
|
|
|
|
시절의 고요를 함께 만든 사람
Designed by @jangzzino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