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대학교 4학년 시기에 그 숲에 자주 내려갔다. 그저 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환경과학 수업 시간에 우연히 그 언덕에 들렀다면, 탄소를 몸에 저장하는 그 나무들에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지구 온난화라는 개념이 대두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윈을 읽고 있었다면, 내 머릿속은 강에 자라는 오래된 나무가 약 2500만 년 전 부터 스스로 진화해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나는 좀 더 기발한 시야로 오래된 나무들을 바라보곤 했다.
자연처럼 살아간다 中
지구의 생명은 방대한 연결의 정원 안에서 번성한다, 게리 퍼거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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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경칩(驚蟄)부터 춘분(春分)까지 참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날씨를 지나왔어요. 어느 날은 기온이 훌쩍 올라 봄처럼 포근하더니 어느 날은 부슬거리는 비가 내려 흐린 하늘 아래 우중충한 분위기가 감돌고 또 어느 날은 별안간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지요.
날씨의 편차가 컸던 만큼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얼굴도, 이어폰을 흐르는 음률의 형태와 박자도 다양했던 것 같아요. 맑고 화창한 날이면 비교적 템포가 빠른 음악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뿌연 안개와 미세먼지가 도시를 뒤덮은 날이면 담백한 통기타 소리에 시를 읊듯, 툭- 툭- 가사를 내뱉는 차분한 목소리를 찾곤 했어요. 멜로디나 화성이 강한 음악보다는 베이스가 두드러지는 곡을 발견하는 재미로 버스나 지하철에 오른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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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음악에 기대어 계절을 지나왔기 때문일까요. 식탁을 꾸리는 일에는 참 게을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초록의 계절이라며 부지런히 나물을 다듬고 푸른 향을 만끽한다는데. 그래서 다가올 여름을 잘 날 수 있도록 미리 몸을 가꾼다는데. 저는 어쩐 일인지 몸이 늘어지고 만사가 귀찮더라고요.. 허허.. 유난히 외식 찬스도 많이 쓰고 간신히 줄였던 배달 음식의 편리함에 젖어 배를 채우곤 했답니다.
지금 편지를 쓰는 이곳의 공기는 꽤 차갑고 서늘해요. 여러분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온도로 머물고 계신지, 어떤 무드의 음악으로 하루를 채우시는지. 어떤 색감의 음식으로 식탁을 장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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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春分). 익숙한 한자가 눈에 들어와요. 단순히 '봄을 구분하는 시기'라는 뜻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이날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데요. 태양이 지구의 중심선인 적도와 일직선상에 놓이면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고 합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서서히 낮은 길어지고 밤은 짧아진다고 해요.
근래에 유독 흐린 날이 많아서인지, 거리의 흙과 나무는 비가 스며들어 여전히 물을 흠뻑 머금은 것처럼 보입니다. 햇빛을 잘 쬐인 나무는 껍질이 버석하고 건조하지만 그늘진 나무는 뿌리와 가까워질수록 축축한 기운이 느껴져요. 가까이 다가가니 쿰쿰한 흙냄새와 나무 냄새도 나고요.
며칠 전 나무에 관한 글을 한 편 읽었어요. '지구의 생명은 방대한 연결의 정원 안에서 번성한다.'라는 소제목을 가진 글이었습니다. 어쩐지 인간의 세계와 닮아 보여서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글쓴이는 자주 숲으로 가서 나무를 관찰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에게 숲은 거대하고 풍요로운 존재였죠. 그는 자신이 숲에서 발견한 나무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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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있는 나무들은 방대하게 얽힌 뿌리 조직의 힘으로 서 있다. 그리고 그 뿌리들은 근균근*이라 알려진 매우 특이한 생명체 덕분에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수백만 년 전부터 공존해온 숲과 균은 긴 시간을 지나며 서로에게 아주 큰 이익을 주는 관계로 발전했다. 실제로는 균류가 나무보다 약 1억 년 전에 생겨났는데, 어떤 균은 나무의 몸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균은 땅 밖으로 보이는 부분이 가로 길이 1미터 이상, 높이는 약 8미터까지 자란다.
나무 밑에서 자라는 균류는 거미줄같이 가는 관처럼 생긴 덩굴손으로, 나무뿌리에 자신을 엮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광합성으로 생성된 나무의 당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나무는 자립적으로 얻을 수 없는 질소 같은 양분을 균이 만든 그물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균이 만든 그물이 뿌리 조직에 엮이면, 그 조직은 방어 반응을 시작한다. 마치 우리가 예방주사를 맞을 때처럼 나무의 면역 체계를 촉진해 병으로부터 보호한다.'
* 균근 (菌根) : 균류와 식물 뿌리가 공생하는 것. 식물은 균류로부터 무기물이나 비타민류를 취하고 균류는 식물로부터 유기물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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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다. 땅속의 균 그물은 개별적인 나무들이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말 그대로 서로를 돕는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가진 가장 최선의 의미대로 숲을 엮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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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근처의 숲에 갔을 때, 작은 묘목들이 그늘에 가려 잘 크지 못하는 모습을 봤다.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제 몸집을 키워줄 탄소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큰 나무들은 어린 나무들도 균 그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큰 나무들이 분자에서 분자로 탄소를 비롯한 다른 양분을 어린 나무들에게 전달한다. 많이 가진 쪽이 그러지 않은 어린 생명에게 영양을 전하며 어려운 상황을 돕는 것이다.
어떤 나무는 병충해 초기 증상을 보였다. 그 나무는 같은 공동체 나무들에게 균 그물 네트워크를 통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거대한 할머니 나무는 이름이 어울릴 역할을 맡고 있다. 몇몇 다른 종을 포함해 수많은 나무를 보살피면서 어리고 연약한 생명에게 늘 양분을 나눠준다. 몸통에 있는 상처들로 보아 긴 시간이 남지는 않았을 테지만, 수명을 다할 때가 되면 이 할머니 나무는 그물을 이용해 남은 양분을 모두 이웃들에게 보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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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나무 또는 너도밤나무.
마르쉐 장터를 방문하기 위해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을 찾았어요.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날은 조금씩 비가 내렸는데 빗물 때문인지 진한 흑갈색의 나무가 유난히 더 어두운색을 띠었어요. 나뭇잎 한 장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가졌지만 오히려 주변의 붉은 벽돌 건물과 어우러져서 웅장했고, 오랜 시간 동안 이 자리를 지켜낸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오래전 서울대 교정이 자리했던 터라고 하는데, 그동안 나무가 지켜보았을 시간과 사람들이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우체국을 지날 때면 향긋한 모과가 주렁주렁 열리는 모과나무도 볼 수 있었어요. 아, 작년 가을에요. 잘 익은 모과가 툭- 떨어지면 길을 걷던 사람들 중, 모과 향을 먼저 맡은 사람 혹은 재빠른 사람이 땅에 떨어진 모과를 주워가곤 했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이 길을 오갈 때마다 작은 열매가 맺혔는지, 얼마나 큼직하게 무르익었는지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새콤달콤한 향이 날 때면 고개를 들어 검은 얼룩이 진 노란 열매를 발견하고 괜히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그런데 행인의 즐거움과 달리 우체국은 나름의 속 사정이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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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둑- 잘려나간 나무의 단면을 보며 멍하니 서있었어요. 이맘때면 미화를 위해 도심의 크고 작은 나무들을 정리하지만 이만큼 잘라버리는 건 왠지 야속하기도 하고. 어떤 이유이든 우리가 모를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서요. 그나마 희망적이었던 건 새로 자라는 가지 덕분일까요. 얇지만 새 가지에서 연둣빛 싹을 틔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봐요. 만약 이 모과나무가 친구들과 함께 모여있었더라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넓게 뻗어가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었더라면. 병충해를 입더라도 균 그물 네트워크를 통해 양분을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나무라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어린 나무에게 양분을 나누고 있진 않았을까. 이들은 '이웃'이라는 단어가 가진 가장 최선의 의미대로 숲을 엮진 않았을까. 그리고 언젠가 길을 걷던 행인 한 명이 잘 익은 모과 향을 맡고 향기를 따라 숲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뿌리 조직의 힘으로 방대하게 얽힌 나무와 땅과 울창한 숲을 우리에게 보여주진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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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자연이 전하는 교훈을 깨닫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시작점이다.
나무는 우리에게 상호 의존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언뜻 보여주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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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시기, 춘분(春分). 오늘 소개할 재료는 <달래>입니다.
두구두구.. 드디어 달래 등장 ! :) 모두 넉넉히 즐기고 계시나요? 3월이 되면 쉽게 볼 수 있는 식재료 중 하나이죠. 수많은 초록 나물 사이에서도 달래는 유독 더 꾸준히 사랑받는 재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국, 찌개, 양념, 무침 등등.. 이처럼 달래는 쓰임도 다양하지만 특유의 향과 아릿한 맛 덕분에 봄의 채소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낄만한 요리를 거뜬히 소화해 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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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입춘 편을 읽고 한 독자분께서 달래 이야기를 남겨주셨어요. 짧지만 너무 재밌는 표현으로 달래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셨답니다. 그리고 마음먹었죠. 아, 이 토스트를 만들어 보고 싶다 !
"저는 채소를 마주하면
그것의 모습에 심취합니다.
대파의 나이테를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춤추는 달래의 우아함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냉동실에 빵을 꺼내어
달래를 쫑쫑 썰어 넣고
파니니 그릴에 구우니
파전이 되었습니다.
빵의 기공 속에 달래 머리를 숑 숑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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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냄새를 맡으니 무른 양파 향이 나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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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에 흙을 잘 씻어낸 뒤
동그란 부분의 누렇게 뜬 껍질을 한 겹 벗겨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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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채소요리는 <달래 토스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달래 토스트는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달래는 된장이나 간장과 섞을 생각만 해봤지 그 향을 빵에 더하다니. 너무 재미있고 신선한 조합이었어요. 파니니 그릴도 오븐도 에어프라이기도 없지만,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프라이팬을 활용한 간단한 빵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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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이 없는 담백한 빵을 준비해 주세요. 바게트, 깜빠뉴, 식빵 등등.. 뭐든 좋아요. 저는 올리브 치아바타를 준비했답니다.
《 재료 》
- 달래 / 빵
- 소스 (소이 마요, 아가베 시럽, 마늘, 소금)
《 레시피 》
① 소이 마요 : 아가베 시럽 : 마늘 = 3:2:1 비율로 섞어 줍니다.
(메이플 시럽, 비정제 설탕을 사용해도 좋아요.)
(달래 향만을 원한다면 마늘은 생략해도 좋아요.)
② 소금도 한 꼬집 넣어주세요.
③ 달래를 잘게 썰고 마요 소스와 섞어 줍니다.
④ 빵은 밑바닥을 1cm 정도 남기고 잘라주세요.
⑤ 빵 칼집 낸 자리에 소스를 넉넉히 발라주세요.
⑥ 통째로 팬에 올리고 뚜껑을 닫습니다.
⑦ 마요 소스가 녹으면 빵을 잘라 단면을 구워줍니다. (달래가 쉽게 타니 약불로 익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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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을 상상해봅니다. 크고 길쭉한 나무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도 상상해보고요. 숲이 우리에게 작은 오솔길을 허락해 발을 내딛는다면, 길을 따라 무성하게 자란 싱그러운 풀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박자박 마른 가지와 뒤섞인 흙 밟는 소리, 어렴풋이 들리는 새소리, 끝없이 우거진 나무들까지. 왠지 하염없이 걷고 싶어지는 영상이에요.
어디든 걷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는 만큼 숲으로- 숲으로- 향하는 마음을 담아 영상을 보냅니다. 산뜻하고 가벼운 걸음이 되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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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독자 한 분이 나눠주신 계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글로 담아주셨는데,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우와 정말? 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답니다. 저는 구글링으로만 경칩을 이해했지 눈과 귀로 절기를 감각하지는 못했거든요. 왠지 행복감이 차오르는 아버지와의 일상의 함께 즐겨주세요. :)
"저는 어제 오랜만에 본가에 갔어요.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아부지께서
경칩이 무언지 아냐며
평소 잘 챙기지도 않으시던
절기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구요.
사실 개구리와 만물이
깨어나는 날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곤 가족들과 오순도순 보리밥을 먹고
만년사를 산책하는데
요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가까이 다가가보니 엄청난 개구리 떼가
호수에서 내는 소리였답니다.
그 순간 아부지가 또 한 번 말씀하셨죠.
오늘 경칩 제대로 느끼는 날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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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리면 빌딩 숲을 벗어나 공기가 맑은 곳으로 산책을 가는 건 어떨까요? 낮이 길어지는 만큼 볕이 따스한 오후의 산책을 조금씩 길게 누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떤 풀이 자라고 어떤 꽃이 벌써 봉오리를 맺었는지 관찰하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을 만끽하는 봄날 보내시면 좋겠어요.
춘분(春分)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계절을 지나 다음 절기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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