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나는 언제고 궁금했다. 모든 빈 공간은 어떤 모양으로 비어 있는가. 세상에 같은 공간은 없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고유하게 만날 것인데. 거기 어떤 모퉁이가 있어, 당신은 어디로 들어오고, 나는 어디를 응시할 것인가. 빈 공간은 다시 또 어떤 빈 공간들로 나뉘고, 당신은 어디서 넘어질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접힐 것인가. 당신의 춤은 어디까지 달려갈 것인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中
공간에서, 목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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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지난 우수(雨水)로부터 지금까지. 흐르는 계절을 잘 지나오고 계시나요? 2월의 어느 늦은 저녁. 저는 연극 공연을 보러 잠시 외출한 걸 마지막으로 갑작스러운 격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PCR 검사로 음성 판정은 받았지만 당분간 집에 머물며 느린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요 며칠 이동 경로가 작은방과 거실뿐이다 보니 좁은 공간을 오랫동안 길게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했어요. 사실 그날 밤 공연 보러 가기 전, 글 한 편을 읽은 참이기도 했지요. 목정원 작가의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에 실린 단편 '공간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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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프랑스에서 한 시절을 보내며 당시에 만났던 무대, 풍경, 사람, 죽음, 말과 노래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합니다. 한국에 돌아와 얼마만큼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추려 책으로 엮었는데요.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가. 이 책의 서문을 '뒤늦게 쓰인 비평'이라고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당시 수업을 통해서 새로운 공간의 결을 온몸으로 익혔던 일. 때로는 가만히 서서 자신이 위치한 공간을 지긋이 응시하고 탐구했던 일. 공간에서 존재하는 법을 감각해 본 일 등등.. 자신이 배운 공간의 경험을 긴 호흡으로 나누어요. 그의 깊고 고요한 생각을 따라가며, 잠시 고립되어 있는 저의 방을 둘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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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밝은 해가 뜨는 시간에 눈을 뜨며. 먼지 쌓인 창틀을 피해 조심스럽게 창문을 여는 요즘.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작은방의 고요한 아침이지만, 한 편으로는 다음 할 일을 위해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새삼 어색하기도 하고 어쩐지 찝찝한 기분마저 들기도 합니다. (허허.. 웃프죠)
만물이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驚蟄)이라기에 간신히 창밖으로나마 계절을 짐작해 보는 것도 잠시일 뿐. 매일 머무는 공간이니 금세 흥미를 잃고 침대와 책상을 오가며 멍하니 앉아 있곤 했어요. 그러다 문득 책상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서랍을 열어 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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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언제 어디선가 줄곧 저를 불편하게 만들던 공간. 사람도 냄새도 낯설던 공간. 그곳에 머물며 빼곡히 기록했던 과거의 수첩을 발견했어요. 평소 같으면 들춰보지 않을 일이지만 익숙한 방구석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머무는 공간을 한 뼘이라도 확장 시켜보고자는 애씀인지. 괜한 반가움을 핑계삼아 작은 종이로 잠시 도피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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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 내가 예매한 좌석에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앉아있다. 좌석 인원을 초과해 이동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 미안하다는 눈짓을 그녀의 엄마에게 보낸다. 웃으며 아이를 무릎에 앉히더니 버스가 출발한 뒤로는 통로에 앉아 있던 할머니의 손에 아이를 맡긴다. 할머니는 커다란 담요 두 장을 꺼내어 한 장은 바닥에 깔아 아이를 눕히고, 다른 한 장으로 아이를 덮어 꽁꽁 싸맨다.
중간에 들린 휴게소나 화장실에서도 아이는 깨지 않고 그대로 담요 속에서 잠을 잔다. 통로의 1/2을 차지한 아이를 밟지 않기 위해 뒤쪽에 앉은 승객들은 모두 조심조심히 발걸음을 옮긴다. 버스는 현지인들로 인해 통로 가득 북적거렸으며, 소음과 냄새 아닌 냄새로 가득했다.
전통 의상을 차려입었던 내 옆좌석의 아이 어머니는 의상과 체구로 인해 내 자리를 훌쩍 넘어 자리했고. 내 앞 좌석의 두 커플은 의자를 있는 대로 뒤로 젖힌 상태라, 나는 그야말로 세 사람 사이에 잔뜩 끼어 팔짱을 낀 채 열두 시간 동안 버스에 앉아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통로에 누워 가는 아이. 통로에 작은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등받이 없이 조는 남학생. 손을 흔들며 도로 한가운데에서 버스에 오르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두 번 연속 등받이 각도가 고장 난 의자에 앉아 가면서도. 빵빵하게 담기어 내 다리와 배를 짓누르는 배낭에도. 어떤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쾌적하게 입고 갈 수 있는 옷을 입고 있음에. 좌석을 예매할 수 있는 돈을 갖고 있음에. 장거리 지루한 버스에서 들을 노래와 기계가 있음에. 잠을 편히 청할 수 있는 등받이가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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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을 달려가는 차창은 안팎의 온도 차이로 인해 수증기가 생겨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차창이 뿌옇게 변해 버리기 전 내가 볼 수 있었던 것..?
오후 6시 30분. 이른 시간부터 환히 떠오른 둥근 보름달. 그리고 수많은 별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잠도 오지 않아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웃기지만 작은 기도였다. 이미 나의 안전과 평안을 위한 기도는 충분히 드렸고,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기도드렸던 적이 있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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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고 궁금했다.
모든 빈 공간은 어떤 모양으로 비어 있는가.
세상에 같은 공간은 없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고유하게 만날 것인데.
거기 어떤 모퉁이가 있어, 당신은 어디로 들어오고,
나는 어디를 응시할 것인가.
공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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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라본 익숙한 공간은 분명 달랐을까요? 유난 떨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있었습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포근한 잠자리가 있다는 것. 풍요로운 음식 덕분에 배곯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당장 방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중고등학교 이후로 한 지붕 아래, 하루 온종일 함께 머무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워진 지금, 어떤 형태로든 가족들과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고립된 공간이 제게 보여준 건, 작은방을 통해 분명히 감각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2017년 버스 좌석 등받이처럼 운이 좋아 누리고 있는 보통의 매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때를 다시 회상한다면 '아- 나는 그 계절에 그런 형태로 머물렀구나'라는 정도로. 공간을 채우던 주변의 존재들을 애틋하게 더듬어보고 있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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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시기, 경칩(驚蟄). 오늘 소개할 재료는 <대파>입니다.
3월이 되었는데 초록 잎의 푸른 봄나물이 아니라서, 혹시 놀라셨을까요. 부쩍 해가 길어지고 코끝이 아리던 찬 기온이 가라앉으면서 정말로 봄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았어요. 원래 멀어질 때 더 서운한 법인지, 겨울의 단맛을 놓치고 지나가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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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국이나 찌개의 마무리로 장식되는 대파는 맵지만 독특한 향미 덕분에 우리의 식탁에 오를 때 향신 채소처럼 귀여운 감초 역할을 맡곤 하는데요. 하지만 단순히 쫑쫑 썰어 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정성껏 조리하면, 의외로 깊은 단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특히 바로 지금. 겨울과 봄 사이에 재배되는 대파는 초록 잎보다 흰색 뿌리 부분이 긴 것이 특징이고요.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갖은 양분을 스스로 축적했기 때문에 더욱 식감이 연하고 달콤합니다.
그럼 윤기나도록 매끈한 대파 줄기와 얇지만 아래로 길-게 생명을 뻗어 내린 대파 뿌리를 관찰해 볼까요? 속이 꽈악 들어찬 굵은 대. 그리고 나무의 나이테처럼 둥근 원을 품고 있는 단면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함께 나누어 보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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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담가두었다가 흙을 제거한 뒤
잘 말려서 냉동 보관.
국을 끓일 때 활용하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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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내서 두부 한 모
(오늘 함께할 친구 반짝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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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채소요리는 <온두부>입니다.
저는 특정 재료에 집중하고 싶을 때나 재료 본연의 맛이 궁금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조리 방식을 택하곤 해요. 대파를 구우면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지만 오늘은 아직 쌀쌀한 날씨와 어울리는 냄비 요리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깨끗한 재료를 작은 냄비에 넣고 끓여서 맑고 따듯한 국물을 만들어 볼게요. 굵은 대파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달큼함. 그리고 대파와 다시마가 어우러지는 국물은 어떤 향과 맛을 내는지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취향에 따라 새콤한 레몬 간장 소스를 찍어 먹거나, 즉석에서 향긋한 생강을 갈아 한 꼬집 정도 곁들여도 좋고.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고추냉이와 함께 맛보셔도 즐거울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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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간단한 오늘의 재료! 물론 알배추나 버섯 같은 채소가 있다면 함께 끓이셔도 좋답니다.
《 재료 》
- 대파 / 두부 / 다시마
- 간장소스 (간장 식초 비정제설탕 후추 레몬즙)
- 기타 (얇게 썬 대파 생강 고추냉이)
《 레시피 》
① 두부는 큼직하게 썰어준다.
② 대파도 큼직하게 썰어준다.
③ 다시마, 대파, 두부를 냄비에 담는다.
④ 간장소스는 취향껏 비율 맞춰보기.
(레몬즙 대신 레몬청, 유자청을 사용해도 좋아요.)
⑤ 취향에 따라 대파를 얇게 썰고 생강도 갈고 (추천) 고추냉이를 얹어서 (왕추천) 맛있게 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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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콕
고추냉이 콕
얇게 저민 대파를 올려서 코를 찡긋 거리며
호호- 불어 먹는 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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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만두를 따로 쪄서
한 그릇에 담아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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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움직임과 관련된 글을 첨부해요. 앞서 소개한 단편 '공간에서'의 일부입니다.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공간에서 존재하는 법을 익혔는지, 몸에서 떠나간 소리는 어떻게 공간에 울려 퍼지는지. 당시 느꼈던 감정과 섬세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어요. 그녀의 문장을 함께 따라 읽으며 자유롭게 상상해 보고. 천천히 음미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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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 6월의 두 번째 날에, 나는 그곳에서 조금 특별한 노래 수업을 들었다. 각 계절을 즈음해 오페라 코믹에서 올리는 공연 속 노래들을 가르쳐주는 자리이지만, 노래 일반에 접근하는 법이라든지 호흡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무엇보다 공간에 존재하는 법을 일러주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화려한 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서 어깨를 떨구고, 팔을 휘 털고, 전신의 무게를 실어 무릎을 구부려보았다가, 거기 호흡과 소리를 얹어가며 몸을 푼다. 말하자면 노래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존재하기 위해 각자가 자기를 불러 모은다. 그렇게 존재한 뒤에, 종래에는 그 존재로부터 소리를 떠나보내기 위해.
몸을 떠나는 소리는 어디로 흩어지나. 소리는 나로부터 나와, 나를 떠나서, 공간속으로 간다. 그랬다가, 그곳으로부터, 다시 영영 사라진다. 그라프롱을 따라 우리는 지정된 음을 짧게 낸 뒤 그 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입술이 소리내기를 멈춘 뒤에도 잠시 더 공간에 남아 떠가는 소리. 공기를 타고 천장으로 날아오르다 미처 닿지 못하고 소멸하는 음.
신기하게도, 소리가 어떻게 울리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감각하는 일은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를 감각하는 일과 닿아있었다. 왜냐하면 소리가 공간의 질곡을 따라, 공간을 쓰다듬으면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세계의 어떠함을, 우리들 몸으로부터 나온 잔향의 스러짐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아침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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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제가 피부로 계절을 느낀 순간은 PCR 검사를 받으러 가던 길이었어요. 아빠, 동생과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나눈 대화에 봄이 반짝 등장합니다.
"이제 곧 꽃이 피겠어."
"이 길은 벚꽃길이라 가장 먼저 꽃이 필 텐데."
"한강에서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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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편지에서 한 분이 나눠주신 계절 이야기도 공유해 보아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강변길을 아름답게 전해 주셨어요. 왠지 그 장면이 그려지면서 버석버석한 길이 상상이 가 행복했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해요. 강변을 따라 나 있는 길로 다녀요. 추운 겨울에는 인적이 드물어 출퇴근 길이 조금 버석버석한 느낌이었는데, 날이 좀 풀렸는지 이제는 곳곳에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여요. 아, 이제는 조금씩 겨울이 가구 있구나. 를 느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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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 계절 소식은 이만 줄일게요. 경칩(驚蟄)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 즐거운 봄날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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