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안녕하세요, 시절의 고요입니다. 무척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첫인사를 드려요. 사실 계절 뉴스레터를 발행하겠다는 공지를 올리고 편지를 시작하기까지 꽤 한참을 망설였어요. 아마 잘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서 완성이라는 고지가 아득했나 봅니다. 한 편으로는 신청해 주신 분들께 따듯하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조바심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런 사람'으로 비치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참 얄팍하고 부끄러운 속내죠. 뻘쭘하고 우습더라고요. 그래서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고 차분한 상태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다소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글을 적습니다.
다행히 힘을 쭉 빼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앞으로 함께할 시간 동안 으스대며 뽐내는 글을 쓰기보다 부족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계절의 기쁨을 알리도록 노력할게요. 벅차지 않은 호흡으로 고요히 자연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당연해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사실은 커다란) 존재들에게 눈과 귀를 기울이고, 일상에서 소소하게 발견한 경이로운 순간과 아름다운 장면을 나눌 것을 약속드려요.
시절의 고요와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언제나 평온이 곁에 머물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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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잘 보내셨나요? 겨울 중 가장 큰 추위가 온다는 대한(大寒)이 지나면 곧 봄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찾아옵니다. 보통 설날 전후가 해당되는데요. 봄의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설날은 늘 한겨울처럼 추웠던 기억이 나요.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면 매서운 바람을 뚫고 동생들이랑 뛰놀던 장면도 떠오릅니다. 사실 우리는 한 박자 느린 타이밍으로 봄을 알아차린다고 해요. 실감하기도 전에 봄은 이미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는 거죠. 실감이 오기 전에 실체가 미리 준비되는 걸까요. 어쩌면 봄은 벌써 단단히 채비를 마치고 묵묵히 자신이 살필 일을 준비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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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저는 '사계절이 오면 오나 보다, 꽃이 피면 꽃이 피었나 보다. 눈이 내리면 이제는 정말 겨울이구나.'라는 정도로 계절을 인식했던 것 같아요. 핸드폰 달력은 들여다보지만 따로 시간을 비워서 계절을 바라보는 다정한 마음은 참 궁했습니다. 무더운 한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이 충분한 멀티플렉스(식당·카페·영화관·쇼핑몰을 한 건물에 갖춘 복합 시설)로 도망가기 바빴고 그건 한겨울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몸이 쾌적함을 느끼고 편리한 곳을 선택할수록, 더욱 쉽게 계절감을 잊곤 했습니다.
아무리 농경사회에 뿌리를 둔 현대인이라고 하지만 번잡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농사짓는 마음으로 계절을 감각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봤어요. 이를테면, 재촉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일. 지름길 대신 구부러져 돌아가는 길을 향해 한 걸음 떼는 일. 때로는 비효율을 예찬하며 삶의 의외성을 만끽하기 위해 빈틈을 열어두는 일들 말이에요.
봄이라는 실체는 어떤 모양으로 어떤 색감을 띠고 어떤 분위기로 우리 곁을 머물까요? 가끔은 건물 사이로 흐르는 입춘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껴 보고, 건조한 나무껍질이 부드럽게 트이는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걸 눈으로 목격하면서 자연의 시간을 짐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떤 경험일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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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탄생의 기적 - 헤르만 헤세
멀리 있는 갈색 숲이 며칠 전부터 어린 초록의 명랑한 빛을 띠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는 초조함과 갈망을 품고 숨어서 엿본다. 아름다움의 계시를 온전히 보고, 파악하고, 함께 경험하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듯이 말이다. 내가 소년이던 옛 시절에 봄은 얼마나 길었던가. 정말이지 얼마나 끝없이 길었던가!
시간이 그런 것을 허용하고, 기분이 좋을 때면 나는 습기를 머금은 풀밭에 오래 누워있었다. 조용한 손님이 되어 소년 시절이라는 행복한 정원으로 꿈꾸듯 들어간다. 다시 한번 그리로 날아가 청춘의 맑은 아침 공기로 숨 쉬고 한 번 더-.
잠시만이라도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아주 드물게 이루어지는 멋진 일이다.
<창비,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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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 오늘 소개할 재료는 <냉이>입니다.
봄나물이라는 인식이 강한 냉이는 사실 늦겨울부터 자라는 채소입니다. 날이 추울수록 뿌리에서 나는 냉이 특유의 향이 강해진다고 해요. 냉이는 하우스 재배도 하지만, 이른 봄 산이나 밭에서 자라는 노지 냉이의 향이 좋습니다. 거친 외형과 씁쓸한 야생의 맛을 품은 냉이를 볼 때면 왠지 일반 나물과는 다른 결의 강인함이 떠올라요. 뿌리에는 온전한 흙의 기운이 담겨 있고. 거친 잎은 태양과 비바람의 손길은 닿았지만 적당히 방목 시켜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자란 아이 같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2월부터 3월까지는 냉이를 만져보고 요리하면서, 냉이의 향이 짙어지고 옅어지는 과정을 체험해 보는 건 어떨까요? 때로는 뿌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은근한 단맛도 음미해 보고 때로는 모양의 변화를 관찰하며 다양하게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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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에 묻은 흙을 살살 털어내면서 손끝으로 직접 재료를 느껴보아요. 졸졸 흐르는 물에 잔뿌리를 쓸어내리며 구석구석 흙을 씻어내는 과정도 즐겁답니다. 두툼한 뿌리를 발견했다면 뚝 끊어서 향을 맡아 보세요. "나는 냉이다~~"라고 은은하게 외치는 것 같거든요. 손질이 끝나면 손끝에 남은 냉이의 향이 산뜻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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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채소요리는 <냉이 된장 파스타>입니다.
냉이 요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인가요? 저는 냉이 된장국이 생각나요. 여린 뿌리와 부드러운 잎을 솎아서 된장국을 끓이고 국물을 한 수저 뜰 때마다 은은하게 퍼지는 냉이의 향긋한 향을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겨우내 따끈한 국물요리와 든든하고 묵직한 요리를 해먹었더니, 왠지 산뜻한 음식으로 입맛을 돋우면서 가벼운 기분을 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늘 요리의 부제는 <채소 듬뿍 파스타>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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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레시피 모두 간단합니다. 냉이를 깨끗이 씻어서 손질만 하면 재료 준비의 80%는 끝난 거예요.
《 재료 》
냉이 한 움큼 / 방울토마토 10알 / 마늘 3쪽 / 청양고추 또는 매운 건고추
《 레시피 》
① 냉이를 손질한다. (굵은 뿌리의 냉이는 약 1cm 크기로 다진다) (얇은 뿌리를 가진 냉이는 통째로 둔다)
②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추 → 마늘 순서로 향을 낸다. (매콤한 맛을 내려고 건고추는 5개 사용했어요)
③ 마늘이 노릇해지면 ①에서 다진 냉이를 넣는다. (이때 다진 잎은 절반만 넣어요)
④ 냉이 향이 올라오면 방울토마토를 함께 볶는다. (토마토가 뭉근하게 익고 껍질이 벗겨질 정도면 좋아요)
⑤ 파스타 삶은 면수를 넣고 된장을 푼다. (파스타 삶을 때 굵은소금으로 충분히 간을 한 상태예요)
⑥ 삶은 면을 넣고 볶는다. (면수를 살짝 붓고 수분이 사라질 때까지 센 불에 빠르게 익혔어요)
⑦ ①에서 남긴 다진 냉이 잎을 넣고 잔열로 숨이 죽을 만큼만 섞어준다. (허브처럼 사용했어요)
⑧ 후추를 톡톡! (면이 너무 뻑뻑하다면 올리브유를 살짝 둘러주셔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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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채소요리의 든든한 지원군은 방울토마토가 아닐까? 싶어요.
토마토 없이 깔끔한 향을 내는 <냉이 된장 파스타>도 가능하지만 토마토가 채워주는 은은한 풍미가 정말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맛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달까요. 냉이로만 채울 수 없는 단맛과 신맛의 균형을 자연스러운 재료로 채워갈 수 있어요.
아, 그리고 된장은 냉이 향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소량만 넣어서 간을 맞췄답니다. 오늘 요리 과정은 간단히 영상으로 제작해서 링크를 공유해 드릴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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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 어울리는 움직임으로 <이완>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려보았어요. 찬 바람이 불면 바짝 긴장하던 몸의 근육을 조금씩 풀어주는 거예요. 꽁꽁 얼어있던 땅이 녹아서 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 몸도 자연의 흐름에 맞춰 천천히 움직여보면 어떨까요?
책상에서, 침대에서..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요가 동작을 소개합니다. 등허리와 어깨가 안으로 굽어 거북목에 가까운 분들, 뒷목의 통증과 뻐근함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분명히 개운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하루 15분. 눈을 감고 영상의 목소리에 따라 천천히 상체를 움직여 보세요.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몸이 이완하는 기쁨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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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의 소식을 전하는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떠셨나요? 처음이라 내용도 어지럽고 구구절절 사사로운 이야기만 늘어놓은 건 아닌지 지루한 건 아닌지 궁금 반 걱정 반입니다. (하핫,,)
이번 계절 뉴스레터를 읽고 부족한 점이나 아쉬운 점을 느끼셨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남겨 주세요. 솔직한 감상과 따끔한 격려를 기다립니다. 이들은 모두 저의 자양분이 되어요. 쑥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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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상에서 발견한 계절 모먼트가 있다면 아래 링크로 공유해 주세요.
예를 들면, 시장에서 제철 재료 발견하기, 재료 다듬기, 제철 채소로 집 밥 만들기, 길을 걷다 발견한 식물, 하늘의 색깔,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바깥 기온, 책의 구절 등등... 어떤 요소든 좋습니다. 사진, 영상, 글 어떤 형식이든 환영해요. 계절감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 저에게 보내주세요. 봄이 끝날 무렵, 보내주신 장면들을 모아 서로의 봄을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봄의 시작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 절기에 만나요. 힘차고 푸른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해피 입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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